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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 전투 – 스파르타 vs 페르시아

1. 테르모필레 전투의 배경 –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갈등기원전 5세기, 고대 세계는 동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랑 속에 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긴장은 이미 마라톤 전투에서 한 차례 폭발했으며,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이러한 갈등의 정점 중 하나로,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아와 중동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유럽 대륙까지 영향력을 넓히고자 했다. 이에 맞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힘을 모아 방어 연합군을 조직했고, 전략적 요충지였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저항을 선택했다. 테르모필레는 ‘뜨거운 문’이라는 뜻을 가진 좁은 협곡으로, 대군의 진입을 차단하기에 적합한 지형이었다...

엑바타나 전투

시리아 제국의 몰락과 메디아-바빌로니아 동맹의 결정적 승리 1. 아시리아 제국의 절정과 쇠퇴 – 제국주의의 한계에 직면하다기원전 7세기 후반, 아시리아 제국은 근동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 제국은 오랜 기간에 걸친 대외 정복을 통해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합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군사 원정과 피지배민에 대한 과도한 수탈, 반란 진압에 따른 내부 피로는 점차 제국의 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슈르바니팔 왕 사후(기원전 627년경)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아시리아 내부는 귀족 세력 간 분열과 각 지역 총독들의 독립 움직임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노리고 신흥 세력들이 부상하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메디아 ..

살라미스 해전

1. 살라미스 해전의 배경 – 페르시아 전쟁과 그리스 세계의 위기기원전 5세기 초, 동서양의 대충돌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 이르기까지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 본토로까지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에서 일시적으로 후퇴했던 페르시아는 다시 대규모의 원정군을 조직하여 그리스를 침공했고, 기원전 480년에는 테르모필레 전투와 아르테미시온 해전 등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격돌하였다. 그러나 레오니다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함락되고, 아크로폴리스는 불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테네의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는 해전을 통해 역전의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그의 주도로 그리스 연합 함대는 ..

마라톤 전투

1. 페르시아 전쟁의 서막: 아케메네스 제국과 그리스 세계의 충돌기원전 6세기 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하며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정복하고 지중해 동부까지 세력을 넓혀갔다. 이 거대한 제국은 결국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충돌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작된 일련의 전쟁이 바로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이다. 특히 이 전쟁의 배경에는 이오니아 반란(기원전 499~494년)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소아시아의 그리스계 도시들이 페르시아의 통치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고, 이때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군사 지원에 나선 것이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의 분노를 샀다. 다리우스는 그리스 본토를 정복함으로써 반란에 대한 보복은 물론, 에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