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패권과 이슬람의 동진
충돌의 서막 : 당나라와 아바스 칼리파국의 팽창
8세기 중엽, 동서 문명의 대표 강국이었던 당(唐)나라와 아바스 칼리파국(‘Abbāsid Caliphate)은 각각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서역 보호를 위해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설치하고, 타림 분지 및 투르키스탄 동부 지역을 군사적으로 장악하며 실크로드 통제권을 확보하려 했다. 한편, 이슬람 제국을 대표하는 아바스 왕조도 751년 우마이야 왕조를 전복하고 새로이 칼리파 정권을 수립한 뒤,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당시 탈라스 강 유역은 페르가나 등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이 혼재된 전략적 요충지였고,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두 제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특히 페르가나 지방의 지배권 분쟁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751년 여름, 탈라스 강 유역에서 양군은 대규모 충돌을 벌이게 된다.
탈라스 전투의 전개 : 당나라 vs 아바스 연합군
전투는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남동부 지역에서 벌어졌으며, 당나라 군은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高仙芝)가 이끌었고, 아바스 칼리파국은 지야드 이븐 살리흐(Ziyād ibn Ṣāliḥ)가 지휘했다. 당군은 일부 소그드계 및 투르크계 병력을 포함한 약 3만 명 규모로 구성되었으며, 아바스 측은 아랍 및 이란계 병사들과 연합 투르크계 부족을 동원해 약 2만~3만 명에 달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투 초반에는 당군이 우세를 점하며 아바스 진영을 압박했지만, 전세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역전되었다. 당나라 측에 협력하던 투르크계 동맹군(카를루크족)이 돌연 아바스 측으로 이탈 및 배신하면서 전세가 급변했고, 고선지 휘하의 당군은 대혼란에 빠진 채 전면 패퇴하게 된다. 수천 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고, 고선지는 간신히 생환했으나, 당나라의 서역에 대한 군사적 우위는 이 전투를 기점으로 급격히 약화되었다.
전투의 결과 : 당나라의 후퇴와 아바스의 영향 확대
탈라스 전투는 군사적 규모에 비해 장기적인 정치·문명사적 파급력이 매우 큰 전쟁이었다. 당나라는 이 전투 이후 안서도호부의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서역 지역 오아시스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실질적인 당의 철수가 진행되며, 이 지역은 이후 점차 이슬람 세력의 문화적·정치적 공간으로 변모해갔다. 아바스 칼리파국은 이 승리를 통해 트란스옥시아나,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 도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화 정책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전투에서 아바스군은 다수의 당나라 포로를 생포하였고, 이들 중 일부 중국 기술자들이 종이 제조 기술을 서방 세계로 전파한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넘어, 기술·지식의 이전이라는 문명 교류의 출발점으로 탈라스 전투가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역사적 의의 : 동서 문명의 접점에서 벌어진 전환점
탈라스 전투는 군사적으로는 일회성의 국지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문명사적 전환점을 제공한 상징적 전쟁이었다. 이 전투로 인해 실크로드 중서부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이 장기적인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이후 약 천 년에 걸쳐 중앙아시아가 이슬람권 문화·상업·종교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배경이 되었다. 반면, 당나라는 이 전투 이후에도 일정 부분 서역 정책을 유지하려 했으나, 755년 발발한 안사의 난으로 인해 제국 내부가 붕괴 위기에 처하면서 서역에서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탈라스 전투는 중앙아시아가 더 이상 동아시아 제국의 변방이 아니라, 독립적 문명권의 분기점으로 기능하게 되는 분수령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이슬람 문명은 동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군사·문화·기술의 흐름이 교차한 이 전투는, 단일 사건을 넘어선 역사적 구조 변화의 한 획을 그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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