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전쟁 이야기 13

가우가멜라 전투

알렉산드로스 대왕 vs 다리우스 3세, 동서 문명의 충돌 1. 동서 문명의 갈림길 – 가우가멜라 전투의 역사적 배경기원전 331년,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서 벌어진 가우가멜라 전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 제국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가 벌인 결정적인 충돌로, 동서 문명이 충돌한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이 전투는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닌, 그리스-마케도니아 세계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 간의 패권 다툼이자, 제국의 흥망을 가른 대결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이수스 전투(기원전 333년)에서 다리우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이집트를 평정하고, 본격적으로 페르시아의 심장부로 진격하고 있었다. 다리우스 3세는 이전 패배를 만회하고자 약 10만에서 25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군을 모았고, 자신에게 유리..

이수스 전투 – 알렉산드로스 대왕 vs 다리우스 3세

1.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과 이수스 전투의 배경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유산을 계승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위에 오른 뒤,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의 구실은 페르시아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오랫동안 간섭하고 괴롭혀왔다는 복수의 논리였지만, 실제로는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세계를 넘어 아시아까지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야망이 깔려 있었다. 그는 헬레스폰트를 건너 아시아 소아시아(현재의 튀르키예 지역)에 상륙한 후, 그라니쿠스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지방 총독들을 물리치고 소아시아 서부를 장악했다. 다리우스 3세는 처음에는 이를 크게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빠른 속도로 내륙을..

레우크트라 전투 – 테베 vs 스파르타

1. 스파르타 패권 체제의 균열과 테베의 부상기원전 371년, 고대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의 여파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아테네가 쇠퇴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스파르타였으며, 그리스 전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통치는 권위적이었고, 특히 보이오티아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점차 이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테베는 그 중심에 있었으며, 보이오티아 동맹의 실질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스파르타에 저항할 역량을 갖추기 시작했다. 테베의 주요 장군인 엡아미논다스와 펠로피다스는 군사적 역량 강화를 추진하며 기존 질서에 도전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스파르타는 테베를 무력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단행했고, 그 결과 양측은 보이오티아..

히메라 전투 – 시라쿠사 vs 카르타고

1. 서쪽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 – 히메라 전투의 배경기원전 480년, 지중해의 동쪽에서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치열한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서쪽 지중해에서도 또 하나의 중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바로 시칠리아섬의 히메라 전투였다. 이 전투는 시라쿠사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계 시칠리아 도시국가 연합과, 북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한 강대국 카르타고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충돌이었다. 히메라는 시칠리아 북부 해안에 위치한 전략적 거점 도시로, 상업과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카르타고는 이전에도 시칠리아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시도했지만, 그리스계 도시국가의 강한 저항에 직면해 있었다. 특히 카르타고는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히메라를 비롯한 시칠리아의..

테르모필레 전투 – 스파르타 vs 페르시아

1. 테르모필레 전투의 배경 –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갈등기원전 5세기, 고대 세계는 동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랑 속에 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긴장은 이미 마라톤 전투에서 한 차례 폭발했으며,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이러한 갈등의 정점 중 하나로,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아와 중동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유럽 대륙까지 영향력을 넓히고자 했다. 이에 맞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힘을 모아 방어 연합군을 조직했고, 전략적 요충지였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저항을 선택했다. 테르모필레는 ‘뜨거운 문’이라는 뜻을 가진 좁은 협곡으로, 대군의 진입을 차단하기에 적합한 지형이었다...

엑바타나 전투

시리아 제국의 몰락과 메디아-바빌로니아 동맹의 결정적 승리 1. 아시리아 제국의 절정과 쇠퇴 – 제국주의의 한계에 직면하다기원전 7세기 후반, 아시리아 제국은 근동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 제국은 오랜 기간에 걸친 대외 정복을 통해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합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군사 원정과 피지배민에 대한 과도한 수탈, 반란 진압에 따른 내부 피로는 점차 제국의 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슈르바니팔 왕 사후(기원전 627년경)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아시리아 내부는 귀족 세력 간 분열과 각 지역 총독들의 독립 움직임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노리고 신흥 세력들이 부상하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메디아 ..

살라미스 해전

1. 살라미스 해전의 배경 – 페르시아 전쟁과 그리스 세계의 위기기원전 5세기 초, 동서양의 대충돌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에 이르기까지 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 본토로까지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에서 일시적으로 후퇴했던 페르시아는 다시 대규모의 원정군을 조직하여 그리스를 침공했고, 기원전 480년에는 테르모필레 전투와 아르테미시온 해전 등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격돌하였다. 그러나 레오니다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함락되고, 아크로폴리스는 불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테네의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는 해전을 통해 역전의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그의 주도로 그리스 연합 함대는 ..

마라톤 전투

1. 페르시아 전쟁의 서막: 아케메네스 제국과 그리스 세계의 충돌기원전 6세기 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 최대의 제국으로 성장하며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정복하고 지중해 동부까지 세력을 넓혀갔다. 이 거대한 제국은 결국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충돌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시작된 일련의 전쟁이 바로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이다. 특히 이 전쟁의 배경에는 이오니아 반란(기원전 499~494년)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소아시아의 그리스계 도시들이 페르시아의 통치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고, 이때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군사 지원에 나선 것이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의 분노를 샀다. 다리우스는 그리스 본토를 정복함으로써 반란에 대한 보복은 물론, 에게해..

트로이 전쟁: 신화와 현실 사이

1.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트로이 전쟁 신화의 기원트로이 전쟁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경에 저술한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은 아킬레우스, 헥토르, 파리스, 헬레네 같은 인물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그리스군과 트로이군 간의 10년에 걸친 전쟁을 묘사하며, 전쟁의 발단을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납치한 사건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명백히 문학적 창작 요소가 풍부하며, 신들의 개입이나 영웅들의 초인적인 능력 등으로 인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전쟁 신화는 고대 그리스인의 정체성과 정치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고, 이후 수세기 동안 유럽의 문학, 예술, 정치 담론에..

메소포타미아 초기 국가 간 전쟁과 수메르의 몰락

1. 도시국가 체제의 형성과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적 경쟁 구도기원전 3천 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류 최초의 도시문명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수메르(Sumer) 지역은 우루크(Uruk), 라가시(Lagash), 우르(Ur), 에리두(Eridu) 등 수많은 도시국가가 서로 독립된 정치 체계를 유지한 채 존재했다. 이들 도시국가는 각각 신권정치에 기반을 둔 중앙 통치 체제를 유지하며 주변 지역과 자원을 두고 끊임없는 경쟁과 전쟁을 벌였다. 초기 수메르 시대의 전쟁은 대부분 수로 확보, 무역 경로 장악, 농경지 소유권을 둘러싼 충돌이었고, 종종 종교적 상징성을 띠기도 했다. 예를 들어, 라가시와 움마(Umma) 사이의 전쟁은 엔릴 신전 소유지를 둘러싼 분쟁으로 기록되며, 이는 도시 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