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재·도로 충전재로의 전환
폐유리 문제의 심각성과 재활용 필요성
현대 산업과 일상에서 유리는 필수적인 소재다. 포장재, 건축자재,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수명이 다한 유리는 그대로 방치되거나 매립되는 경우가 많다. 유리는 생분해되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는 데 수천 년이 걸리기 때문에, 적절한 처리 없이 방치된 폐유리는 환경적 부담을 크게 가중시킨다. 특히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색상이 혼합된 유리는 재활용이 어렵고, 대부분이 일반 폐기물로 분류되어 매립지로 보내진다. 이에 따라 폐유리의 자원순환 체계 확립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자원 절약과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연간 수십만 톤의 폐유리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재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다. 특히 투명 병, 갈색 병, 녹색 병 등은 색상별로 분리해 재활용해야 품질 저하를 막을 수 있지만, 실제 수거 단계에서 색상 분리가 미흡하면 재활용 공정에 부담이 되고, 결국 순환경제에서 이탈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폐유리를 새로운 용도로 전환하는 기술적 접근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폐유리의 파쇄 및 정제 공정
폐유리 재활용은 크게 파쇄, 선별, 세척, 정제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먼저, 수거된 폐유리는 크기와 종류에 따라 분류된 후 파쇄기를 통해 작은 조각, 일명 ‘컬릿(cullet)’으로 만들어진다. 컬릿은 새로운 유리 제품의 원료로 바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정밀한 재활용을 위해서는 불순물 제거가 필수다. 세라믹, 금속 캡, 라벨 등의 이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면 최종 제품의 품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자력 선별기, 공기 분리기, 광학 선별기 등을 활용해 철저한 정제 과정을 거친다.
컬릿의 입자 크기 역시 용도에 따라 조정된다. 유리병을 다시 제조하는 경우, 비교적 큰 입자도 사용 가능하지만, 단열재나 도로 충전재로 활용될 경우에는 훨씬 미세한 분쇄가 요구된다. 이처럼 정제된 폐유리는 자원 재활용 공정의 핵심 소재가 되며, 새로운 제품에 투입될 수 있는 등급으로 전환된다. 특히, 고온에서 재용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존 유리 원료보다 에너지 소비가 낮고, 탄소 배출량도 감소한다는 장점이 있다.
단열재·도로 충전재로의 응용 가능성
폐유리를 단열재로 전환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표적인 예로 유리섬유 단열재는 건물의 벽면이나 천장 내부에 사용되며, 열전도율이 낮고 불연성이 뛰어나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폐유리를 1,0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용융시켜 실 형태로 뽑아내는 공정은 에너지 소비가 크지만, 탄소 배출이 적고 자원 순환 측면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다. 또한 이 유리섬유는 기존의 석면 대체재로도 활용 가능하여, 친환경 건축 자재로 각광받고 있다.
또 다른 응용 분야는 도로 충전재다. 폐유리를 파쇄한 컬릿을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에 혼합하면 내구성과 배수성이 개선되며, 도시 열섬 현상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폐유리 컬릿을 도로 포장재로 활용하는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다만, 컬릿의 품질과 혼합 비율, 입자 크기 등에 대한 기술적 기준이 정립되어야 상용화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제도적 과제와 지속가능한 방향성
폐유리 재활용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경제적 과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수거 단계의 비효율성이다. 유리병의 색상별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컬릿의 품질이 낮아지고, 재활용 시장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재활용 유리에 대한 수요가 아직까지는 제한적이어서, 안정적인 시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 차원에서는 ‘순환경제 이행계획’ 및 관련 자원순환법을 통해 폐유리의 분리배출 강화, 수거체계 개선, 기술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지속 가능한 폐유리 재활용을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통해 유리병 제조업체에 일정한 재활용 책임을 부과하고, 재활용 제품에 대한 인증제도나 세제 혜택 등 유인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컬릿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재활용 기술의 다양화와 표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폐유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적절히 활용하면 다시 자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순환경제의 중심 소재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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